
<리포트>
황량한 기찻길 옆
남가주 개스컴퍼니
개스 시설 앞에
세워진 한 안내 현판.
이곳이
파차파 캠프가 있었던
문화사적지라고
설명하고 있습니다.
지난 1905년
도산 안창호 선생이 세워
백여 명의 한인들이
함께 모여 살았던 파차파 캠프.
파차파 캠프는
미국 내 첫 한인 집단 거주지,
다시 말해 최초의
코리아타운이었습니다.
<장태한 ㅣ UC리버사이드 교수>
파차파 캠프는
한인사회의 지속적인
역사 연구를 통해
발굴돼 세상에 알려졌습니다.
한인들이 중가주 리들리와
북가주 윌로우 또는
LA 등으로 퍼져 나가기 전
한인 이민자들의
구심점 역할을 했던 겁니다.
지난 2007년 3월에는
리버사이드시로부터
공식 사적지로
지정받기도 했습니다.
<장태한 ㅣ UC리버사이드 교수>
한인학자들은
파차파 캠프가
단순한 한인 이민자들의
집단 거주지였던 것이
아니라고 강조합니다.
도산 안창호 선생은
파차파를 통해
나라의 독립을 꾀하고
민주적인 법칙에 의해
유지되는 이상적인 마을을
실험했다는 주장입니다.
<장태한 ㅣ UC리버사이드 교수>
시대를 앞선
이민 선조들의 정신이 서린
파차파 캠프는
수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의
한인사회에도
깊은 깨달음을 주고 있습니다.
LA에서 SBS 전영웅입니다.